음식의 역사

김치가 시어버렸다, 끓여볼까..? 김치찌개의 역사

묵어보까 2026. 8. 30. 19:53

 

냉장고를 열었는데 김치가 있다.

찌개를 끓인다.

돼지고기를 넣고 푹 끓인 김치찌개에 흰쌀밥 한 공기.

한국 사람에게 이보다 익숙한 한 끼도 드물 것이다.

그런데 김치가 아주 오래된 음식이라는 건 잘 알려져 있지만, 김치찌개는 대체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

 

김치는 오래됐지만 김치찌개는 그렇지 않다?

김치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됐다.

삼국시대에도 채소를 소금 등에 절여 먹었던 흔적을 찾을 수 있고, 고려시대 문헌에서도 무를 소금에 절여 먹었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한다.

당시의 김치를 지금 우리가 먹는 새빨간 배추김치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옛날 김치는 빨갛지 않았다.

당연한 이유가 있다.

고추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추는 원래 아메리카 대륙에서 재배되던 작물로, 조선시대에 이르러 한반도에 들어왔다.

17세기 초 문헌인 『지봉유설』에도 고추에 관한 기록이 등장한다.

하지만 고추가 들어왔다고 곧바로 전국의 김치가 빨갛게 변한 것은 아니다.

고춧가루를 사용한 김치가 널리 자리 잡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오늘날과 비슷한 형태의 김치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도 그 이후의 일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추측을 해볼 수 있다.

김치찌개 역시 지금과 같은 매운 김치가 자리 잡은 이후에 등장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시작은 '너무 익어버린 김치'였을지도 모른다

김치찌개의 탄생에는 거창한 이야기가 없다.

왕이 먹기 위해 만들었다거나, 어느 유명한 요리사가 개발했다는 기록도 없다.

오히려 시작은 아주 현실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먹다 남은 김치와 시어진 김치다.

김치는 발효 음식이다.

시간이 지나면 점점 익고, 어느 순간부터 신맛이 강해진다.

특히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지금처럼 김치의 발효 속도를 정확하게 조절하기도 어려웠다.

그렇다고 귀한 음식을 버릴 수도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끓이면 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도 김치찌개가 김장김치를 생으로 먹기 싫을 때나 먹다 남은 김치, 시어진 김치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니까 김치찌개의 시작은 어쩌면

“김치가 너무 시어졌는데 이걸 어떻게 먹지?”

라는 아주 평범한 고민에서 출발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옛날에는 김치찌개라고 부르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찌개'에 해당하는 음식을 조치라고 부르기도 했다.

특히 궁중에서는 김치찌개를 '김치조치'​라고 불렀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김치찌개와 만드는 방법에도 공통점이 많았다.

김치를 적당히 썰어 뚝배기에 담고 쇠고기나 돼지고기 등을 넣는다.

여기에 파와 마늘을 넣고 물을 부어 푹 끓인다.

방법만 보면 꽤 익숙하다.

수백 년 전 사람이 주방에서 김치와 고기를 넣고 찌개를 끓이는 모습을 본다면 우리도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저거 김치찌개 아니야?”

이름만 달랐던 셈이다.

 

돼지고기는 언제부터 들어갔을까?

 

김치찌개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돼지고기다.

잘 익은 김치에 비계가 적당히 붙은 돼지고기를 넣고 푹 끓이면 돼지고기의 기름이 김치에 스며든다.

김치의 신맛은 부드러워지고 국물은 묵직해진다.

하지만 김치찌개에 반드시 돼지고기만 넣었던 것은 아니다.

쇠고기를 넣기도 했고 멸치로 국물을 내기도 했으며, 지역과 가정 형편에 따라 다양한 재료를 사용했다.

동치미 무나 깍두기처럼 먹다 남은 다른 김치를 활용하기도 했다.

결국 김치찌개에는 정답이 없었다.

집에 있는 것을 넣고 끓이는 음식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김치찌개가 오랫동안 한국인의 식탁에서 살아남은 이유인지도 모른다.

 

전쟁 이후 김치찌개의 친구가 하나 더 생겼다

 

20세기 중반이 되면 김치찌개에는 새로운 재료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햄과 소시지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 부대를 통해 햄과 소시지 같은 가공육이 들어오면서 사람들은 이것을 김치와 함께 끓여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조합은 결국 완전히 새로운 음식으로 발전한다.

바로 부대찌개다.

김치와 돼지고기를 끓이던 음식에 햄과 소시지라는 새로운 재료가 들어가면서 또 하나의 찌개가 탄생한 것이다.

음식은 이렇게 시대에 따라 계속 변한다.

김치찌개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오늘날 김치찌개에 들어가는 재료는 훨씬 다양하다.

돼지고기 대신 참치를 넣기도 하고,

꽁치를 넣기도 하고,

두부를 잔뜩 넣기도 한다.

심지어 햄이나 스팸을 넣는 집도 있다.

그래서 재미있는 논쟁도 생긴다.

“김치찌개는 돼지고기지.”

“아니다. 참치가 최고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생각하면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애초에 김치찌개 자체가 남은 김치에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넣어 끓여 먹던 음식에서 발전했기 때문이다.

냉장고 속 재료에 따라 김치찌개의 모습도 계속 달라진 셈이다.

 

김치찌개가 특별한 이유

김치찌개는 화려한 음식이 아니다.

비싼 재료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김치가 있고,

물 조금 넣고,

집에 있는 고기나 두부를 넣고,

푹 끓이면 된다.

그런데 바로 그 평범함 때문에 김치찌개는 오랫동안 살아남았다.

궁중에서는 김치조치라는 이름으로 먹었고,

평범한 가정에서는 시어진 김치를 버리지 않기 위해 끓였고,

시대가 변하면서 돼지고기와 참치, 햄 같은 새로운 재료도 받아들였다.

그렇게 수많은 집에서 조금씩 다른 김치찌개가 만들어졌다.

어떤 집은 국물이 많고,

어떤 집은 자작하고,

어떤 집은 돼지고기를 듬뿍 넣고,

어떤 집은 두부가 절반이다.

그래서 어쩌면 김치찌개에는 하나의 완벽한 조리법이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집집마다 다른 김치찌개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이 음식의 역사일 것이다.

오늘 저녁에도 어딘가의 냉장고에서는 너무 익어버린 김치 한 포기가 발견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김치를 보며 생각할 것이다.

“이거 그냥 먹기는 좀 신데….”

냄비를 꺼낸다.

돼지고기를 넣는다.

불을 올린다.

오래전 누군가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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