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역사

강렬한 냄새, 강렬한 맛, 청국장

묵어보까 2026. 8. 30. 19:29

 

뚝배기 하나가 식탁에 올라온다.

보글보글 끓는 국물에 두부 한 조각을 건져 밥 위에 올린다.

맛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냄새가 장난이 아니다.

 

청국장을 끓인 날이면 집에 들어오는 순간 오늘 저녁 메뉴를 맞힐 수 있다.

방문을 닫아도 소용없다. 심지어 다음 날까지 청국장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렇게 강렬한 존재감을 가진 청국장은 대체 언제부터 한국 사람들이 먹기 시작했을까?

청국장은 전쟁터에서 만들어졌다?

청국장의 유래를 찾아보면 꽤 그럴듯한 이야기가 하나 등장한다.

바로 전쟁터 음식설이다.

청국장은 된장과 달리 발효시키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삶은 콩을 따뜻한 곳에 두면 며칠 만에도 발효시킬 수 있다.

그래서 전쟁 중 군인들이 빠르게 만들어 먹었던 장이라서 '전국장(戰國醬)'​이라고 불렀고,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청국장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듣고 보면 꽤 그럴듯하다.

전쟁터에서는 몇 달씩 된장을 숙성시킬 수 없으니 빨리 만들 수 있는 청국장이 훨씬 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뒷받침할 확실한 근거가 부족하다.

오히려 옛 문헌을 연구한 일부 연구자들은 청국장과 비슷한 발효 콩 음식이 전쟁터 음식설보다 훨씬 이전부터 한반도에 존재했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청나라에서 온 음식일까?

이름 때문에 생긴 또 하나의 이야기도 있다.

청국장.

여기서 '청국'을 보고 자연스럽게 청나라(淸國)​를 떠올릴 수 있다.

실제로 청나라에서 장 만드는 방법이 들어와 '청국장'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하지만 이 설명 역시 확실하지 않다.

왜냐하면 청나라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한반도에는 콩을 발효시켜 먹는 문화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고구려와 신라 시대의 기록에서도 '시(豉)'​라고 불리는 발효 콩 식품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오늘날의 청국장과 당시의 음식이 완전히 똑같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한반도 사람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콩을 발효시켜 먹었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청국장의 역사를 연구한 학자 가운데서는 그 역사를 2,000년 이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니까 청국장이 정말 청나라에서 처음 들어온 음식이라면 시간 순서가 상당히 이상해지는 셈이다.

옛날에는 '청국장'이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름이다.

옛날 사람들이 지금처럼 처음부터 '청국장'이라고 부른 것은 아니었다.

문헌을 살펴보면 시대에 따라

젼국, 쳔국, 쳥국

등 여러 이름이 등장한다.

한자로는 주로 시(豉)​라는 글자가 사용됐다.

이후 청국장이 된장이나 간장처럼 하나의 '장'으로 인식되면서 이름 뒤에 장(醬)이 붙기 시작했고, 전국장·전시장·청국장 등 여러 한자 표기가 나타났다.

즉 '청국장'이라는 이름을 보고 청나라에서 온 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름만 보고 역사를 거꾸로 추측한 것일 수도 있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청국장'이라는 이름이 자리 잡기까지도 꽤 긴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청국장의 가장 큰 무기는 '속도'였다

 

청국장이 다른 장과 확실하게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엄청나게 빨리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된장은 메주를 만들고 발효하고 숙성시키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청국장은 다르다.

콩을 푹 삶은 다음 따뜻한 곳에서 발효시키면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먹을 수 있다.

전통적으로는 삶은 콩을 볏짚과 함께 따뜻한 곳에 두었다.

볏짚 등에 존재하는 미생물이 삶은 콩에서 증식하면서 발효가 진행되고, 우리가 청국장을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끈적끈적한 실도 만들어진다.

그리고 또 하나가 만들어진다.

그 유명한 냄새다.

냄새 때문에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지만, 역설적으로 빠른 발효는 청국장이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왜 청국장은 이렇게 냄새가 날까?

청국장의 강렬한 냄새 역시 발효 때문이다.

삶은 콩에서 미생물이 증식하면서 콩의 단백질 등을 분해하고 여러 물질을 만들어낸다.

그 과정에서 청국장 특유의 향이 생긴다.

그러니까 우리가 청국장집 앞을 지나가다

"으악, 무슨 냄새야."

라고 말하는 바로 그 냄새는 사실 콩이 열심히 발효되고 있다는 흔적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는 악취지만 누군가에게는 밥 한 공기를 부르는 냄새다.

일본의 낫토와는 무슨 관계일까?

 

청국장을 이야기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음식이 있다.

바로 일본의 낫토다.

둘 다 삶은 콩을 발효시키고, 콩을 집어 올리면 끈적끈적한 실이 늘어난다는 점까지 상당히 닮았다.

그래서 종종 "청국장이 일본으로 건너가 낫토가 된 것 아니냐"거나 반대로 "낫토가 한국으로 들어와 청국장이 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동아시아에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콩 발효 음식이 존재했다.

중국에는 두시(豆豉)가 있고, 한국에는 청국장이 있으며, 일본에는 낫토가 있다.

따라서 단순히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의 원조라고 말하기보다는 동아시아의 오래된 콩 발효 문화 속에서 각 지역의 방식으로 발전한 음식으로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비슷한 재료로 시작했는데도 먹는 방법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낫토를 밥에 올려 먹지만 한국에서는 청국장에 두부와 김치, 고기 등을 넣어 보글보글 끓여 찌개로 먹는 문화가 발달했다.

콩은 같았지만 각자의 길을 간 셈이다.

냄새 때문에 외면받고, 냄새 때문에 기억되는 음식

오늘날 청국장의 가장 큰 장점이자 가장 큰 약점은 아이러니하게도 똑같다.

냄새다.

특유의 냄새 때문에 청국장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고, 아파트나 다가구에서는 한 번 끓이기도 부담스럽다.

반대로 청국장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그 냄새가 오히려 매력이다.

뚝배기에서 보글보글 끓는 청국장에 두부 한 조각, 잘 익은 김치, 그리고 밥 한 숟갈.

화려한 음식은 아니다.

하지만 수천 년 동안 콩을 재배하고 발효시키며 살아온 사람들의 경험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음식이다.

생각해보면 꽤 대단하다.

냉장고도 없던 시대에 사람들은 콩을 오래 먹을 방법을 찾았고,

삶아보고,

띄워보고,

기다려보고,

먹어봤다.

그렇게 만들어진 음식이 오늘날까지 우리의 식탁 위에 올라오고 있다.

 

청국장은 단순히 냄새 나는 음식이 아니라, 시간의 향을 품고 있는 음식인지도 모르겠다.